이상아 남편들 “세번재 결혼, 5년 전 이미 파탄” [리얼극장]
배우 이상아가 세 번째 이혼 사실을 고백한 가운데 ‘리얼극장’에서 속사정을 밝힐 예정이다. 12월 2일 EBS ‘리얼극장-행복’ 제작진 측은 “그동안 행복하게 잘 사는 것으로 알려져 왔던 세 번째 결혼생활마저 5년 전에 경제적 파탄으로 끝나고 만 것”이라며 “하지만 이상아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살았다. 이제 그녀는 바닥에서부터 다시 일어서야 하는 가혹한 현실 앞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어 “열네 살에 연예계에 데뷔해 그 누구보다 화려한 인기를 누렸던 하이틴 스타에서 복잡한 사생활의 여배우로 전락한 배우 이상아. 그 이면에는 한량인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두 자매를 부양해야 했던 소녀 가장 이상아의 애환이 숨겨져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소녀 가장이라는 짐이 무거워 도피로 나만의 가족을 찾아 선택했던 첫 결혼. 그 결혼이 억울한 루머 속에 끝나면서 그녀는 결혼의 굴레에 갇히고 말았다”며 “그로 인해 그녀는 연기자로서 설자리를 잃었고 가족 속에서도 돌아갈 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특히 “그 이후 배우 이상아의 심리상태가 공황 장애에 빠진 것은 물론 모녀의 관계마저 멀어지고 말았다”고 이상아가 공황 장애를 앓았던 사실도 공개했다.
#. 이상아 한때는..
1984년 중학교 1학년 때 KBS 드라마 '산사에 서다'로 연기자로 첫 데뷔하였다. 1970년대, 80년대에는 그야말로 가위질로 대변되는 검열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당시 10대들은 암암리에 테이프나 LP, 영화등을 소비하면서 문화 소비층이 되었고 이런 트렌드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이상아였다. 당시 남자 중고생들의 3대여신이던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의 대항마로 떠오른 한국 여배우가 이미연과 이상아였다.
1985년 영화 '길소뜸'에서는 당시 중2였는데 임권택 로리콘 고영욱인가?? 감독의 협박[2]으로 노출씬도 찍었다고 한다.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하이틴 스타로써 큰 인기를 얻으며 이름을 날리게 된다. 70년대에는 이영옥, 임예진, 강주희 등이, 이후 이상아와 비슷한 시기에는 강수연과 조용원, 최수지, 김혜수, 하희라 등이 하이틴 스타로 크게 활약을 했다.
이후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 '너와 나의 비밀일기' 를 비롯해 특히 대학생들한테 큰 인기를 끌었던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출연하면서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아이돌 스타 못지 않게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각종 광고에 등장했다. 1997년 동갑내기 개그맨 김한석과 결혼했으나, 1년 뒤 이혼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후 방송활동이 뜸했다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SBS 아침 드라마 '순결한 당신' 등으로 복귀하였다가 다시 활동이 뜸해졌다. 이 시기에 성형외과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으나, 나중에 본인이 '병원 광고모델로만 활동 했을 뿐 방송계를 떠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개신교 모태신앙 신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예전 영화 무당 촬영 당시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2000년 전모씨와 재혼했으나 이혼했다. 이후 2003년 윤모씨와 재혼(삼혼)을 해 잘 살고 있었지만, 2016년 12월 2일 결국 이혼 보도 기사가 나왔다.
집은 최진실처럼 가난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리 넉넉한 쪽도 아니었다. 이상아가 연기 생활을 한 이후부터 가족들은 딸의 수입에 의존, 흔한 헐리우드 아역 배우의 부모처럼 아무도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탓인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굴곡이 심한 편이다.
'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설화 성추행 논란, 박대성 복귀전 "뒷탈" (5) | 2016.12.11 |
---|---|
공명 정혜성, 거침없는 사랑고백 "꿀케미 폭발” (0) | 2016.12.11 |
1박 2일 김소연 "김종민 소개팅녀 미모에, 어쩔” (6) | 2016.12.04 |
SNL 엄앵란 유방암 조롱 “나는 잡을 가슴이 없어요" 난감 (0) | 2016.12.04 |
사람이 좋다. 37살 황보 가족 빚 고백 "뭉클" (0) | 2016.12.04 |